이 글은 22살의 내가 겪은 우리사주 투자 실패담이자, 그로 인해 변화한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들어가며
2021년 여름, 나는 크래프톤 직원으로서 우리사주를 약 6억 2천만원어치 매수했고, 최저가 기준 약 4억 4천만원어치를 손실봤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큰 결정을 했고, 그로 인해 내 20대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넋두리 겸 적어보려 한다.
병역특례
나는 크래프톤, 그 당시 PUBG(Player Unknown's Battleground)에 병역특례 개발자로 입사했다. 병역특례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식 명칭은 IT 산업기능요원(보충역)이며, 여러 대체복무제도 중 하나다. 병무청에서 지정한 업체에서 일하며 병역을 이행하고,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포함한 2년 동안 복무 후 소집해제를 하게 된다. 비슷한 대체복무 방식으로 IT 전문연구요원이 있는데, 전문연구요원은 석/박사만 가능한 제도이며 약 3년을 복무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군대를 가지 않고 회사를 다니며 병역의무를 다할 수 있다니!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개꿀"이라는 마음으로 기쁘게 다녔다. 그러나 이 병역특례제도는 내 삶의 궤적을 180도 바꿔놓았다.
크래프톤의 첫인상
병역특례(이하 병특) 복무를 위해 여러 회사에 입사지원 하던 중, 미국에서 학교 다닐 당시 친구들과 열심히 하던 게임인 배틀그라운드가 한국에서 만든 게임이고, 심지어 병특 복무가 가능한 회사라는 걸 알고 신기하고 기뻐하며 지원했다.
서초 마제스타시티 7층에 멋드러지게 있는 PUBG 사내 카페와, PUBG IP를 활용한 고급진 인테리어, 엄청난 퀄리티의 구내식당은 첫 출근한 21살의 나의 애사심을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심지어 입사하고 약 1년 뒤에 개발자 연봉을 일괄 2000만원 상승하는 이벤트²도 있었기에, 나의 애사심은 쭉 상승했다.
NEW STATE Mobile
내가 크래프톤에 입사하고 2년 동안 몸담은 프로젝트의 이름은 뉴스테이트 모바일(New State Mobile)으로, 모바일 버전의 PUBG(이하 펍지)였다.
모바일 버전의 펍지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면, 대게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본다:
"이미 모바일 버전의 펍지인 PUBG MOBILE이 있는데, 왜 또 만드나요?"
펍지 모바일이 이미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뉴스테이트를 만드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뉴스테이트 개발 이유
Disclaimer: 앞으로 설명할 내용들은 절대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으며, 절대적으로 내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힌다.
1. 오리지널 게임플레이의 계승
펍지 모바일과 펍지 PC를 플레이해 보았다면 알겠지만,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펍지 PC는 현실감 있는 건플레이, 거친 서바이벌, 배틀로열 등에 초점을 두어, 초기의 룰셋에 큰 변화 없이 서비스를 하는 중이다. 게임 자체도 꽤 어려울 뿐더러, 백 명 중 한 명만이 승리자가 되는 장르의 특성상 승리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과정이 험난하다.
반면 펍지 모바일은 아무래도 모바일 게임이다 보니 오리지널 PC 버전보다 훨씬 캐주얼하다. 모바일 버전은 총기 반동이 거의 없고, 여러 편의 기능이 추가되어 있으며, 모바일 폰에 맞춰서 그래픽도 더 단순하다. 그리고 기존의 룰셋을 파괴하는 업데이트도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리그 오브 레전드'와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한다면, 펍지 모바일 내의 게임 캐릭터가 징크스, 바이, 케이틀린으로 변할 수도 있다. 혹은 내 캐릭터가 날아다니거나, 웨어울프로 변신하는 등 색다른 이벤트들도 많다.
뉴스테이트는 펍지를 모바일로 가져오되, PC 버전의 오리지널리티를 모바일로 가져오기 위한 도전이었다. 수준 높은 그래픽, 현실감 있는 건 플레이, 오리지널 펍지에 가까운 게임성 등을 모바일로 가져와, 기존의 펍지 모바일과의 차별성을 기대했다.
2. 자체 개발 모바일 게임의 필요성
펍지 모바일은 사실 크래프톤에서 개발한 게임이 아니다. 크래프톤이 중국 기업인 텐센트에 IP와 여러 초기 기술을 공유해주고, 텐센트가 제작한 모바일 게임이다.
PC 게임 시장의 성장세는 모바일 게임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비하면 정체된 모습을 보여줬다. 코로나와 맞물려 더 많은 사람들이 모바일 게임을 즐기게 되었지만, 크래프톤의 주 매출은 PC/콘솔 게임에서 발생했다. (펍지 모바일 제외)
따라서 회사에서도 PUBG IP를 사용한 모바일 게임을 자체제작하고 싶은 니즈가 있었을 것 같다. 뉴스테이트를 개발하면서 얻은 모바일 게임 개발력으로, 앞으로 모바일 게임 타이틀을 확보해갈 전략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인도 시장 공략
2020년 PUBG MOBILE은 인도에서 한창 잘나가고 있었으나, 중국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인도 정부에서 펍지 모바일을 서비스 금지시켰다.⁴ 만약 100% 한국에서 제작하는 뉴스테이트를 펍지 모바일의 잘 성장시킨다면, 중국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인도에서 금지당할 일도 없을 터였다.
크래프톤은 항상 인도시장을 매력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인도 시장 공략을 위해서라도 뉴스테이트가 성공하길 바랐을 것이라 추정한다.
뉴스테이트의 성공 가능성
그리고 사실 뉴스테이트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펍지 모바일의 성공이지 않을까? 펍지 모바일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모바일 게임 중 하나다.
센서타워(모바일 앱 통계 웹사이트)의 2022년 5월 기사에 따르면, 펍지 모바일은 이미 $8 Billion lifetime revenue (약 10조원의 총 매출)를 기록했다.⁵ 모바일 게임 하나로 약 2년 만에 10조원을 벌었다. 정말 기록적인 매출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가정이지만, 단순하게 생각해서 뉴스테이트가 펍지 모바일 매출의 10%만이라도 도달할 수 있다면 그건 1조원의 총 매출이다. 나는 원체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편이라, "이미 펍지 모바일이 잘되는데, 뉴스테이트라고 못할 게 뭐가 있는가?"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 뉴스테이트 팀의 분위기를 회상해보건대, 이러한 성공에 대한 믿음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당시 팀 전반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나와 팀의 믿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뉴스테이트의 사전 예약자 수는 약 5000만 명에 도달했다.
오천만!
오천만이면 대한민국의 인구 수 아닌가? 글로벌하게 대한민국 인구 수만한 사람들이 뉴스테이트를 사전예약 했다. 심지어 이 사전예약은,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진행되는 것으로, 앱이 런칭되면 자동으로 사전예약한 사람의 스마트폰에 설치되는 사전예약이었다. 오천만명의 앱 인스톨을 사전예약으로 이미 확보했었다. (물론 런칭 당일에 핸드폰의 용량이 부족하거나, 네트워크가 불안정하면 다운로드 받아지지 않는다.)
당시 나는 데이터 엔지니어로서,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에서 오천만이라는 사전예약 데이터를 가져온 장본인이었다. 나조차도 이 숫자가 믿기지 않아 여러 번 확인을 했을 정도다. 심지어 플레이스토어 구글 담당자에게 문의도 했지만,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기는 하나, 사전 예약 수치는 틀리지 않았다라는 답변도 들었다.
이미 성공한 펍지 모바일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던 뉴스테이트 팀 입장에서는, 오천만이라는 사전예약 수는 당시 팀의 분위기를 더욱 더 고조 시켰다. 사람들은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회사에서도 거액의 마케팅 예산을 책정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도 뉴스테이트의 사전예약수를 기사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크래프톤 비상장주식의 장외가도 고공행진을 했다.
이 흐름을 읽기라도 한걸까? 마침 크래프톤이 상장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사주 청약
크래프톤은 상장을 준비했고, 크래프톤 구성원들에게 우리사주 구매에 관련 안내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사주는 흔히 ESOP (Employee Stock Ownership Plan)이라고도 부르며 근로자로 하여금 자기회사주식을 유리한 조건으로 매입해 보유토록 함으로써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고, 보유주식의 가치 상승시 이를 향유하게 함으로써 재산형성에 도움을 주는 제도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⁶
우리사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1년간 의무 예탁 기간이 있으며, 이 기간 동안 주식 인출 불가
- 단, 퇴사 시에는 의무 예탁 기간이어도 인출 가능
- 소득공제, 과세이연, 배당소득 비과세 등 세제 혜택 존재
- 크래프톤의 경우 한국증권금융에서 우리사주담보 대출이 가능했다
비록 1년동안 퇴사하지 않는이상 팔 수 는 없지만, 구성원으로서 회사 주식 가격 상승에 대한 효과를 같이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우리사주의 가장 큰 매력은 레버리지 효과였다. 일반 직장인이 언제 대출받아 6억이라는 거금을 주식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2021년 기준, 상장 게임사들의 주가를 분석해보니 펄어비스를 제외하면 모두 상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크래프톤의 시총이 이미 높아서 큰 수익은 바라지 않았지만, 어느정도는 '안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특히 크래프톤 상장 전년도 그리고 해당연도의 IPO한 기업들의 주가추이를 지켜보면, 손실에 대한 걱정은 조금씩 잊혀저만 갔다.
"설마 공모가보다 떨어지겠어?"
2021년 IPO 시장의 열기
2020 ~ 2021년은 걸출한 기업들이 IPO(상장)를 했던 해 였다. COVID19으로 인한 정부의 역대급 유동성 공급 정책과 맞물려, 주식시장이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던 기간이다. 이 당시 상장했던 기업들을 몇가지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카카오게임즈
크래프톤과 같은 게임회사로써, 2020년 하반기에 상장을 했다. 상장 첫날, 공모가인 2만4000원보다 3배를 웃도는 8만1100원까지 상승했다. 카카오게임즈에서 우리사주를 청약한 직원들은 하루만에 돈방석에 앉았다는 뉴스도 심심치않게 들려왔다.
SK바이오팜
SK바이오팜도 2020년 하반기에 코스피에 화려하게 상장을 했다. 상장 첫날 공모가인 4만9천원보다 약 2.5배정도인 12만 7천원 선에서 거래되었다. 우리사주를 취득한 SK바이오팜 직원들이 '대박'을 터뜨려서 줄퇴사를 했다는 기사가 여럿 올라왔다.
카카오뱅크
카카오뱅크의 상장은 아직도 회자되는 강렬한 헤드라인이 있다.
카카오뱅크, 4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시가총액 추월!
카카오뱅크는 상장 당시 시가총액이 약 39조로, 4대 금융지주의 시총 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카카오뱅크 직원들도 우리사주로 인생역전을 했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왔다.
위 세 회사를 제외하고도, 많은 회사가 상장을 했었고, 상장 첫날의 주가가 공모가 대비 두 배로 가는 흔히 말하는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시작하고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이 흔했다. 이런 성공 사례들을 보며, 내 마음속에서는 크래프톤도 비슷한 궤적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커졌다. 물론 크래프톤의 시총이 이미 꽤 높은 편이어서 현실적으로 '따상'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상승은 기대했다.
상장 전의 불안 신호들
하지만 크래프톤 상장에는 몇 가지 불안한 신호들이 있었다.
높은 공모가
크래프톤이 희망했던 공모가는 무려 45만8000원 ~ 55만7000원이었다. 해당 가격의 가치 산정은 크래프톤을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과 같은 글로벌 컨텐츠 기업에 비교하여, 해당 기업군의 평균 P/E인 45배을 적용해서 산정된 가격이었다. 심지어 처음 제시했던 희망공모가 밴드 상단인 55만7000원은, 증권신고서 제출 당시 55만원 이었던 장외가보다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상장한 기업 중 공모가가 장외가보다 높았던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며 “주당 가격도 최근 10년간 상장한 기업 중 가장 비싸 시장의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경 전예진 기자)⁷
결국 크래프톤은 금감원의 지적¹을 받고, 희망 공모가를 40만원 ~ 49만8,000원으로 낮췄고, 공모가는 희망 공모가 밴드의 상단인 49만8000원으로 책정됐다.
저조한 수요예측 경쟁률
크래프톤 공모주 청약의 수요예측 경쟁률은 다른 회사들에 비해 저조했다.
크래프톤 청약 결과 통합 경쟁률은 통합 경쟁률은 7.79 대 1로 집계됐다. 다른 공모주와 비교해 저조한 청약 결과다. 같은 날 청약을 진행한 원티드랩은 1731.2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달 청약을 진행한 카카오뱅크도 38.7 대 1에도 못 미친다. (머니투데이 김태현 기자)³
여기서 말하는 수요예측이란, 기관투자자들에게 크래프톤 공모주의 가격이 40 ~ 49만원 사이인데 얼마에 그리고 몇주나 매입 의사가 있냐를 물어보는 과정이다. 만약 10만주가 기관투자자에게 배정된 몫이지만, 100만주가 넘는 매수주문이 들어온다면 경쟁률은 10대1이 되는 거다.
크래프톤의 경쟁률은 7.79 대 1로, 절대적으로 낮은 숫자는 아니지만, 다른 인기 상장 기업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률이었다.
우리사주 청약
이런 불안 신호들이 있었지만, 나는 뉴스테이트라는 프로젝트에 대한 희망과 크래프톤이라는 회사에 대한 믿음이 컸다. 그래서 크래프톤 우리사주 1,256주를 청약했고, 이는 (49만8000원 × 1,256주) 약 6억2천5백만원에 달했다.
나만 많이 청약한 게 아니었다. 당시 뉴스테이트 데이터팀의 여러 동료분들도 1000주 넘게 청약하셨다. 사전예약 숫자를 가장 먼저 집계한 팀이라 그랬는지, 다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혹은 미쳐있었다.)
우리사주 청약 자금은 다음과 같이 마련했다:
- 그동안 모은 미국 대학교 학비
- 한국증권금융의 우리사주담보대출
- 회사 연계 은행 대출
- 가족의 지원
22살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내 계좌의 이체한도를 10억으로 늘려가며 우리사주 청약을 완료했다.
"설마 공모가보다 떨어지겠어?"
상장 당일
상장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주식창을 열었는데 시초가가 공모가보다 낮은 44만8천500원이었다. 시초가는 상장 당일, 공모가의 90~200% 범위에서 동시호가로 결정되는데, 44만8천500원이면 이론상 가장 낮은 시초가인 44만8천200원보다 겨우 300원 높은 수준이었다. 시작부터 내 우리사주 평가액은 약 10% 하락했고, 당시 22살의 나는 생전 처음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하루만에 거의 5천만원을 잃은 하루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상장전 같은 데이터팀에 계시던 동료분이 사내메신저인 슬랙에서 같이 "영차"를 외치며 주가 상승을 기원하는 채널을 만들었다. 2024년 말 기준 현재도 아직도 해당 채널에서는 우리사주에 고통받는 크래프톤 구성원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다.
뉴스테이트 런칭과 주가 58만원 달성
크래프톤의 주가는 상장 초반의 충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회복했고, 50만원선까지 올라왔다. 2021년 11월 11일 뉴스테이트가 드디어 런칭했고, 초기 인기에 힘입어 주가는 11월 19일에 최고점인 58만원을 찍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다행이다,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고 안도했다.
뉴스테이트의 부진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뉴스테이트의 유저 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런칭 초기에 가장 많은 유저가 몰렸을 때 서버도 불안정했고, 잦은 버그와 크래시가 있었다. 펍지 모바일과 차별화하려 했던 진보된 그래픽이 오히려 독이 됐다. 저사양 핸드폰 유저들은 게임 실행조차 버거워했다.
우리가 의도한 '차별화'가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 기존 펍지 모바일 유저들은 뉴스테이트를 체험하다 다시 펍지 모바일로 돌아갔다
- PC의 오리지널리티를 좋아하는 유저들은 여전히 모바일로 오지 않았다
- 높은 사양 요구로 인해 신규 유저 유입도 제한적이었다
주가 폭락과 내 자산의 증발
증권가는 뉴스테이트의 부진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크래프톤 주가는 정말 폭포수처럼 하락했고, 최고가인 58만원에서 2023년 말에는 역대 최저가인 14만5900원까지 떨어졌다. 약 6억2천5백만원이었던 내 우리사주 평가액은 최저점 기준 (14만5900원 × 1,256주) 약 1억8천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누군가는 왜 주가가 58만원일때 팔지 않았냐고 물으실수도 있다. 일단 주가가 58만원일 때에는 우리사주 의무보유기간인 1년이 지나지 않아서 매도를 할 수 없었다. 퇴사를 했었다면 매도했을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뉴스테이트 런칭 준비한다고 업무적으로 바빴기에, 퇴사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것도 있다. 그리고 퇴사 절차를 밟고, 우리사주담보대출을 매도상환형태로 갚고 주식을 인출 하는데에는 최소 약 4주가 소요된다. 이 4주의 딜레이 때문에, 주가가 어느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섣불리 퇴사를 결심하지 못했던것도 있다.
삶의 변화
미뤄진 꿈
뉴스테이트 런칭 전, 그리고 크래프톤 상장 전에 나는 이미 병역의무를 마친 상태였다. 병무청으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언제든 퇴사 하고 미국으로 가도 되었다. 그러나 내가 약 2년동안 속했던 프로젝트의 런칭을 경험해보고 싶었고, 내가 다니던 회사의 코스피 상장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소집해재 뒤에도 더 남아 일을 했었고, 우리사주도 청약했었다.
그 당시 내 계획은 이랬다:
- 병역특례 완료
- 미국 학부 복학 및 졸업
- OPT 프로그램으로 미국 빅테크 취업
- H-1B 비자로 미국 정착
슬프게도, 우리사주로 인해 위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일단 우리사주 청약작금으로 그동안 모아두었던 학비로 소진했고, 적지 않은 대출이자가 발생했다. 원달러 환율도 계속 상승했기에, 복학은 멀어져만 갔다.
동기들과의 격차
그 사이 미국의 내 학부 동기들은 다들 졸업하고 흔히 말하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에 취업했다.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빅테크들은 채용을 공격적으로 확대했고, 신입 개발자 연봉도 치솟았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연봉 15만~25만 달러를 받았다.
이럴수가.
나는 우리사주로 30만 달러를 잃었는데, 같은 시기에 동기들은 그만큼을 벌고 있었다. 비교는 괴로웠다. 부러웠다. 그리고 조급함도 밀려왔다.
단순한 연봉 차이를 넘어 경력의 질적 차이도 컸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크래프톤에서의 경력과 실리콘벨리 빅테크에서의 경력은 시장에서 다르게 평가받았다. 나는 동기들을 따라잡기 위해 더 열심히 성장해야만 했다.
우리사주는 의도치 않게 나를 배수진으로 몰아넣었다.
새로운 도전: 블록체인 프로젝트
본사 데이터팀 발령
뉴스테이트 런칭 약 4개월 후, 크래프톤은 각 스튜디오의 데이터팀을 본사로 통합했다. 우리 팀도 뉴스테이트 소속에서 크래프톤 본사 데이터팀으로 이동했다. 본사 데이터팀은 크래프톤의 모든 게임 데이터를 통합 관리했다.
크래프톤 본사는, 뉴스테이트와 같은 신규 프로젝트와 다르게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큰 성공이나 실패도 없는 자리였다. 현재 연봉에 평균 임금상승률을 적용해서 계산해보면, 약 5년 정도 일하면 저축하면 우리사주 빚을 갚고 다시 학비도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5년동안 본사에서 일하며 벌고, 저축하고, 소비할 돈이 엑셀시트의 형태로 내 눈 앞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안정적인 삶은 싫었다. 나는 아직 20대 초중반이었다. 지켜야 할 가정도, 키워야 할 자녀도 없었다. 이 황금같은 시기를 그저 안정적으로 보내긴 싫었다. 더구나 이미 뉴스테이트의 실패를 겪었기에, 오히려 더 큰 도전을 하고 싶었다. 성공이란 달콤한 열매를 한번쯤은 꼭 맛보고 싶었다.
때마침 크래프톤 라이브 토크(KLT)에서 김창한 대표님이 블록체인 프로젝트 추진한다는 말을 넌지시 했다. 이미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이 있던 나는 바로 해당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당시 시장에는 완성도나 재미가 떨어지는 블록체인 게임들도 단지 '블록체인'을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크래프톤이 제대로 된 블록체인 게임을 만든다면? 원체 낙관적인 나는 또다시 미래를 상상하며 설렜다.
그렇게 나는 새롭고 도전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코어 백엔드 개발자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직 대신 내부 이동을 선택한 이유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왜 이직은 생각하지 않았나요?"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 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항상 날개를 갈고닦아 나뭇가지가 부러져도 날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나도 내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다. 날개가 괜찮아도, 우리사주 대출이라는 무거운 족쇄를 달고 있어 날아가지를 못했다.
퇴사하면 우리사주 대출을 전부 갚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사주 대출을 한 번에 갚을만한 현금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시중은행의 대출을 받아 대출을 갈아타야 하는데, 때마침 제로 금리의 시대가 저물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가 주도하는 고금리의 시대가 찾아왔다. 미국 기준 금리가 5%를 넘기 시작했다. 저금리인 우리사주 대출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고금리인 시중은행 대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회사를 나갈 순 없었지만 새로운 도전은 하고 싶었다. 그래서 크래프톤의 도전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내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새로운 도전의 험난함
역시 블록체인 프로젝트도 순탄치 않았다. 팀이 꾸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라/루나 사태가 터졌고, 크립토 시장의 유동성은 말라붙었다. 블록체인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차가워졌고, 블록체인 개발자 채용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역경은 오히려 우리 팀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말이 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더욱 연구와 개발에 몰입했다. 단순히 '블록체인'이라는 키워드로 성공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가 Settlus(세틀러스)라는 블록체인이다. 이 블록체인은 어떤 체인이고, 어떻게 말이 되는지는 내 전 블로그에 자세히 적어놓았다. 세틀러스는 아직 테스트넷 단계지만, 조만간 메인넷 런칭을 앞두고 있다.
개인적 성장
지난 2년간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는 개인적으로도 많이 성장 했다. 서버 개발, 암호학, 금융까지 - 데이터 엔지니어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는 폭넓은 지식을 쌓았다. 우리사주가 나를 사지로 몰아넣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도전적인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가 회복의 희망
새로운 기대작들
2024년 현재, 크래프톤 주가는 많이 회복됐다. 14만원대까지 추락했던 주가는 33만원선까지 올라왔다. 시장의 관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
- 인조이: 기존 심즈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중
- 다크앤다커 모바일: 베타테스트와, 해외 게임 컨퍼런스에서 뜨거운 반응
- 서브노티카2: 이미 전작에서 증명한 게임성으로 예고편만으로도 엄청난 화제
- 팰월드 모바일: 혜성처럼 등장해 스팀에서 역대 최고 동시 접속자 수 2위를 기록한 PC 게임을, 크래프톤에서 모바일 버전으로 개발 중.
- 눈물을 마시는 새: 탄탄한 IP 기반으로, AAA 게임을 개발 중
- 펍지 PC: 람보르기니, 블랙핑크, 뉴진스 등과의 콜라보로 역대 최대 매출 갱신 중
- BGMI: 인도 시장에서 순항 중인 크래프톤 독자 개발 게임
주주와 직원으로서의 전망
그 동안 국내 게임 주식 중 시가 총액 부동의 1위였던 엔씨소프트의 주가 하락으로 국내 게임섹터 ETF의 비중이 크래프톤으로 많이 이동했다. 외국인 수급도 꾸준해서 외국인 보유율이 높은 주식이 됐다.
크래프톤 주주이자 직원으로서, 나는 아직도 이 주식이 저평가됐다고 믿는다. 앞으로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
마무리하며
지난 3년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야 숨을 좀 돌릴 수 있게 됐다. 우리사주를 위해 빌렸던 대출도 어느정도 갚았다. 틈틈이 투자해둔 미국 주식들도 꾸준히 상승해서 도움이 됐다. 크래프톤 주가도 다시 30만원선을 회복했다.
그리고 가장 다행인 건, 아직 내게는 도전할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점이다. 25살, 아직 기회는 많다.
우리사주 실패는 오히려 내 위험 감수성(risk tolerance)을 키워줬다.
내게 불었던 바람들 중에 너는 가장 큰 폭풍이었기에
그 많던 비바람과 다가올 눈보라도
이제는 봄바람이 됐으니
(운이 좋았지/권진아)
내가 좋아하는 한 노래의 가사처럼, 20대 초반에 겪은 이 폭풍과도 같은 고통과 시련 덕분에, 앞으로의 어떤 도전도 덜 두렵다.
나는 앞으로도, 도전적이고, 낙관적이며,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삶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위험한 투자는 이제 그만...😅)